[인벤기고컬럼 8] 자체 서버실부터 GBaaS까지, 게임서버 구축방법의 변천사

우리는 어디서나 컴퓨팅 자원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연산능력에 비해 PC 가격은 지극히 낮아졌고, PC를 직접 구하지 않더라도 클라우드라는 이름으로 가상 서버를 손쉽게 얻어 누구나 서버를 돌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하고 내 머리카락이 빠져 프로스카를 쪼개먹는 일이 필요해지는 동안 게임 서버를 구축하는 방식 역시 많이 변화해왔다.

이번 회에서는 게임 서버를 구축하는 방식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 자체 서버실의 시대

우리나라에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것은 대략 1999년정도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 전까지는 인터넷 연결 없이 PC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물론 “접속”같은 영화에서 보듯 하이텔이나 데이콤, 나우누리같은 PC 통신은 존재했고, 그들 서비스가 전화 PPP라는 방식을 통해서 인터넷 연결을 제공하긴 했지만 속도는 너무 느렸고, 전화비도 많이 나와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개인용 컴퓨터에서 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창세기전 같은 패키지 게임을 설치해서 플레이하거나, 문서작업을 하거나, 아니면 CD-ROM이나 ZIP Drive같은 보조 저장장치로 복사해 온 동영상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1998년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산실에 1배속, 그나마도 걸핏하면 뻑나는 CD Writer가 있는 정도였으니 정보의 이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제약이 컸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인터넷이 이런 상황이니 서버를 운영하는 주체도 별로 없었다. 서버는 대학이나 대규모 기업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때문에 서버를 누군가가 대신 운영해준다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초창기 게임 서비스는 해당 개발사의 건물 어딘가에 서버실을 만들어 거기에 서버를 쌓아두고 이루어졌다.

내가 재직했던 넥슨 역시 선정릉역 인근 건물에 단지 서버 몇 대를 가지고 바람의나라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서버는 지금 기준으로는 어이없을지 모르지만, 당시 PC 기준으로는 최첨단인 Pentium II 350Mhz CPU 두 개 꽂고 256MB RAM을 사용한 조립 기계였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Pentium II가 Pentium III가 되고, 메모리는 512MB까지 쓸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기계를 직접 마련해서 회사 건물에 쌓아두는 건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엔씨소프트처럼 직접 조립을 하지 않고 인텔 서버를 공급하는 업체에서 사다가 쓰는 회사도 있었고, 인텔 서버가 아니라 SPARC이나 IBM AIX를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서버는 회사 서버실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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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인텔 Pentium III CPU를 두 개 꽂은 서버. 지금의 CPU와는 달리 팬 일체형에 슬롯 형태로 꽂는 타입이다. 이런 서버들을 서버실 한켠에 쌓아두고 서비스를 했었다. (출처: tyan.com)
이렇게 서버를 직접 두고 서비스한다고 할 때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어떤 것이 큰 병목이 되기 시작했을까? 바로 네트워크였다. 예나 지금이나 서버측에서는 네트워크가 큰 병목이 되는데, 일반 인터넷망으로 서비스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용선을 서버실까지 끌어와야 했는데 이것이 돈도 많이 들고 단순히 돈을 지불한다고 한도 끝도 없이 공급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에 넥슨에서 이걸 담당하신 분이 과거 넥슨 공동 대표와 네오플 대표를 하셨고 현재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 협회장을 맡고 계신 강신철 회장님인데, 그때 회선 따오려고 통신사 분들과 술을 엄청나게 많이 드시고 그랬다. 나의 저질체력이라면 절대 못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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